암환자의 감정, 마음이 춤을 춰야 몸도 살아난다

안녕하세요. 한의사 김형찬입니다. 진료를 하면서 풀리지 않는 만성피로와 각종 통증 그리고 무력감으로 힘든 분들께 종종 이렇게 묻곤 합니다. 

“요즘 사는 게 재미있으신가요?”

이 질문에 대부분 이렇게 답하세요. 

“요즘은 뭘 해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내가 뭘 열심히 한다고 해서 뭔가 변하는게 있을까 싶고요.”

마음이 풀 죽어있으니 당연히 몸의 활력은 떨어집니다. 몸이 지치고 여기 저기 아픈 곳만 생기니, 새로운 것을 하기도 점점 어려워지죠. 사는 게 재미없고 매사 시큰둥 해집니다. 권태는 우울증 만큼이나 어렵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좀 먹습니다. 

동양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일곱가지로 구분합니다. 기쁨, 분노, 걱정, 생각, 슬픔, 놀람, 두려움 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은 물론 내가 아닌 밖의 세계와 끊임없이 부딪칩니다. 감정은 이 부딪침에서 발생하고, 동양에서는 이것을 일곱가지로 나눈 것이죠. 

그런데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감정들을 우리 몸에 대입시킵니다. 왜냐하면 감정은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정은 분명히 우리 몸에 어떤 작용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감정의 문제로 인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서양의학에서는 감정을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에 연결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감정으로 인한 병에 이런 물질들을 조절하는 약물을 쓰는 겁니다. 

한의학은 감정이 일으키는 우리 몸의 반응에 초점을 맞춥니다. 감정에 따라 나타나는 신체 반응의 패턴을 분석하고, 이 패턴을 조정함으로써 감정으로 인한 문제를 치료 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느낄 수 있고 분명하게 존재하는 현상이므로, 이런 일련의 과정을 ‘기’의 흐름이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즐거우면 기의 흐름이 느슨해지고, 화가 나면 기가 위로 치밀어 오르고, 슬프면 기가 소모되고, 걱정하면 기가 가라앉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감정과 신체반응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특별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일이죠. 기쁘거나 웃긴 일이 있어서 한참을 웃고 났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너무 많이 웃고나면 맥이 풀린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몸의 긴장이 풀어지죠. 화가 나서 씩씩거리다가 누군가 실없는 농담을 건내서 픽~ 하고 웃으면 머리 끝까지 차오르던 화가 살짝 풀린 경험이 한번쯤 있으시죠? 

그런가 하면 화가 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숨이 차오릅니다. 여기서 좀 더 나가면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지고 눈에 핏발이 곤두섭니다. 이런 것을 보고 기운이 위로 치솟아 오른다고 표현한 것이죠. 

걱정이 많으면 어깨가 축 쳐지고 기운이 가라앉기만 하니 가슴에 채워지는 것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쉬게 됩니다. 
 

한의학에서는 이처럼 감정과 기의 흐름의 변화를 통해 몸의 패턴을 읽습니다. 침과 뜸 그리고 약초를 이용해서 이 흐름의 패턴을 조절해서 치료하고요. 얼마 전에 한의사가 어떻게 정신질환을 치료하나요? 라고 묻는 환자분에게도 같은 설명을 드렸습니다. 

실제 연구결과에서도 침치료는 우리 몸 속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를 일으키고, 전통적인 한약재에서 추출한 물질이 정신과 치료에 쓰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있을 뿐, 모든 의학은 인간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사람이 병이 나는 것은 여러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의 경우 감정이 일으키는 흐름에 휩쓸려 병이 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감정의 문제들로 가랑비에 옷 젖듯 병이 난 환자들을 자주 봅니다. 이런 환자들은 자신이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로는 감정이 아예 굳어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때로는 잦은 상처로 굳은 살이 박히듯 무감각해진 것이죠. 

치료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가장 힘든 경우 중의 하나입니다. 불씨가 살아 있는데 장작이 부족하다면 장작만 넣고 바람을 불어 넣어 주면 됩니다. 하지만 꺼져버린 불을 되살리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몸과 마음의 힘을 북돋아 주면서, 즐거움과 행복이란 이름의 불꽃을 되살려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서서히 화력을 키우면서 그 힘을 제 갈 길로 유도해 줍니다. 이 과정은 의사와 환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시간과 노력이 더해져야 비로소 좋은 건강의 회복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은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기뻐하고, 화도 내고 때론 슬퍼하기도 하고 고민도 하고 앞날이 두렵기도 한 것이 사람입니다. 느끼고 표현하는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이 그만큼 풍성하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감정들이 없다면 우리는 아마 살지 못할 겁니다. 다만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특정한 감정에 휩쓸려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환자들과 상담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마치 시험문제의 정답처럼 다루는 것은 아닐까? 너무 엄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쁘고 슬픈 것이 아니라 기쁜 것 같고, 슬픈 것 같은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웃는 법을 잊고 그것을 배우러 가기도 하지요. 

풍부하고 섬세한 감정은 식어버린 심장의 불꽃을 일으키고 삶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원천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내 마음을 춤추게 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 김형찬 원장은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바뀐다는 신념을 가지고 서울 명륜동 다연한의원에서 환자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참장> <맛있는 음식보감> 등의 책을 썼습니다. 본 칼럼의 내용은 유튜브 채널인 <암환자생활교실>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com/@ohkin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