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 암환자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안녕하세요. 한의사 김형찬입니다. 저는 만성질환자나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환자 그리고 암의 표준치료 후 건강관리를 원하시는 분들께 좋은 식이와 함께 참장을 권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건강한 음식과 참장에 관심있는 분들은 제가 쓴 책 참장과 맛있는 음식보감 두 권의 책을 참고해 주세요.) 

참장을 익히는 환자분에게는 몸에 익을 때까지 자세를 점검해 드리고 있는데요. 얼마 전 새로 시작하신 분에게 잘 되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하셨어요.  
"시간 나면 해야지 하는데, 자꾸 잊어버려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하루 중 십분 정도 시간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거예요. 다만 마음을 다잡고 집중해서 할 시간을 찾다 보면 못하게 될 수 있죠. 아침에 일어나면 관절들 가볍게 풀고 그냥 하세요. 잘되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려요. 잘되든 안 되든 매일 그 시각에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시간에 맡기세요." 
영민한 환자는 제 말에서 바로 진리를 깨닫고 말했습니다.  
"그냥 루틴으로 해야 하는군요!" 

치료를 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먹고, 움직이고, 숨쉬고, 잠자는 일입니다. 다들 알고는 있는데 다들 실천을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아주 쉽고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길 권합니다. 예를 들면 
- 점심 먹고 10분 햇볕 쬐며 산책하기  
- 자기 1시간 전에는 휴대폰 보지 않기  
- 자려고 누워서 10분간 천천히 숨쉬기 연습하기  
- 밥 먹을 때 열 번씩 더 씹어서 삼키기  
- 일주일에 한번 간헐적 단식하기 
- 아침에 일어나서 맨손체조하기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상담 때 물어보면 그것도 자꾸 잊어버린다고들 하세요. 그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는 아닐 겁니다. 그것보다는 무의식중에 뭔가 특별한 것, 평소 하지 않던 것을 해야 한다는 긴장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것만 하면 다 됩니다~ 같은 생각을 버리고, 그냥 밥 먹고 물 마시듯 하시길 권합니다.  

뭐 한가지를 먹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세상의 병원은 다 문을 닫았을 겁니다. 시간이 나면 하지~ 하면 절대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활 리듬에 맞게 특정 시간을 딱 정해두고, 그때가 되면 잘하든 못하든 일단 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죽이 되는 밥이 되는 그냥 합니다.  

사전에서는 '루틴 Routine'을 '판에 박힌 수작', '정해진 순서', '진부한 것', '늘 하는 일과' 라고 설명합니다. 컴퓨터 용어로는 프로그램에 의한 컴퓨터의 일련의 작업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정리해보면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때가 되면 하던 대로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남과 다른 것, 간지나는 것, 새로운 것, 변화 그리고 창조적이고 특별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요즘 트렌드와는 좀 맞지 않는 것도 같습니다. 왠지 좀 진부하고 게으른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그런데 뛰어난 프로 선수들은 이 루틴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성적이 좋았을 때의 자신의 루틴을 분석해서 이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고도 하죠. 검도장에 가면 5급의 초보자도 5단의 고단자도 본운동에 앞서 기본 동작을 연습합니다. 이 과정은 다른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죠. 지루하기도 하고 늘 하던 것이라 건성으로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고단자로 갈수록 이 기본동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실제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선수일수록 고난이도의 기술보다 기본기를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죠.   

루틴이 시간의 축적과 만나면 그 운동을 하는데 적합한 몸과 마음의 상태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낙숫물이 섬돌을 뚫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죠. 저는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이야기하는 '일만 시간의 법칙'도 루틴의 위대함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아픈 상태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길 권합니다. 앞서 예로 든 것처럼 하루 십여 분이라도 나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일을 루틴으로 하길 처방합니다. 십분 루틴에 성공한다면, 이 작은 변화가 마중물이 되어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너무 잘하려고 하거나, 이것으로 뭔가 근사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란 기대는 긴장을 만들고 실천에 짐이 되기 쉽습니다. 큰 기대 없이, 하는 둥 마는 둥, 하지만 시작하면 온전히 그것에만 집중합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몸과 마음의 긴장을 내려 놓는 효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방울 한방울 쌓인 힘은 나를 건강하게 바꾸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내 건강의 최후의 보루가 됩니다.  

저는 '루틴 Routine'을 뿌리 내리기란 의미의 '루팅 Rooting' 이라고 부릅니다. 지루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반복이 어느새 흔들리는 나를 지탱하는 삶의 든든한 뿌리가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매일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이 변화를 위한 유일한 해결책인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좋은 루틴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가 저는 불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사람도 병에 걸린 사람도, 모두 내일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살아가는 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불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종교도, 돈이 최고라는 가치관도 모두 이 불안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것입니다. 벗어날 수 없다면 잘 다루거나 잘 버텨내며 오늘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를 돌볼 수 있는 일상의 루틴을 만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 김형찬 원장은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바뀐다는 신념을 가지고 서울 명륜동 다연한의원에서 환자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한의학>, <50 60 70 한의학> <참장> <맛있는 음식보감> 등의 책을 썼습니다. 본 칼럼의 내용은 유튜브 채널인 <암환자생활교실>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com/@ohkin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