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유의 시작, 건강한 자극이 필요합니다

저는 퇴근길에 라디오를 듣습니다. 3개 정도의 채널을 번갈아 가며 듣는데요. 채널을 바꿀 때마다 정말 세상이 달라집니다. 수많은 욕망이 부딪치는 지옥같은 현실이 펼쳐지기도 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도 하고 어떤 채널에서는 아무 걱정 없는 한량같은 세계를 만나기도 합니다. 라디오 채널에 따라 바뀌는 저의 생각과 감정을 보면서 무엇을 경험하느냐가 한 사람을 만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날인가 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방송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독서량이 일 년에 9-10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문고판 책에 교통카드를 넣어 무료로 배포한 브라질의 출판사와 버스에서 책을 읽으면 요금을 받지 않는 루마니아의 한 도시의 이야기 소개합니다.  

사람들에게 책을 읽게 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소개하면서, 진행자는 책을 통해 전해지는 인생의 의미를 향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때 마침 내리는 빗방울 소리와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을 떠다니는 정보들은 넘쳐나는데 왜 세계 각국은 책을 읽지 않는 것을 걱정할까? 정보의 바다를 채운 이야기들이 가치가 없어서?’ 
‘책을 통해 전해지는 인생의 의미란 어떤 것일까? 그것이 종이책이 아니라 전자책을 통해 전해지면 또 다를까?’ 
‘임신 중에 종이책을 많이 본 엄마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성향이 다를까? 인공지능이 대신 기억하고 생각해 줄지도 모르는 시대에 종이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런 속에서 인류는 또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닐까?’

집에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고 나서  ‘마라톤에서 지는 법’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라디오 방송이 다시 떠올랐어요. 그 순간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그 내용을 알게 되는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의 손의 감각과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종이의 냄새, 책을 읽는 동안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 그리고 잠시 주변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 같은 고립감까지. 이 모든 것이 독서란 단어 안에 들어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이책이라도 수험서와 같은 목적이 뚜렷한 책이나 흔한 자기계발서라면 그 느낌이 다르겠지요. 그런데 책 중에는 끝끝내 기존의 나를 깨뜨리고 새로운 세계로 끌어들이고야 마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런 책은 우리가 화면을 통해 접하는 정보들이 주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한 자극을 몸과 마음에 줍니다. 

책이 건강과 무슨 상관이지?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 듯 합니다. 

환자를 살피면서 몸과 감정의 감각들이 마모된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일상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삶의 이야기가 그 밥에 그 나물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다들 그렇게 사는 것 아니냐고 말하실 겁니다. 이 또한 맞는 말입니다. 어제의 삶과 오늘의 삶의 대부분은 비슷하죠.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착각을 하면서 산다는 점에 있습니다. 우리는 SNS나 유튜브 등을 통해 뭔가 새롭고 다양한 세상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우리 안에 일으키는 파문은 지극히 말초적이고 돌아서면 잊히는 별것 아닌 게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그 정보의 호흡이 점점 짧아지고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죠. 마치 색깔만 다른 막대사탕을 먹는 것처럼 말이죠. 포장과 향은 다양하지만 먹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설탕 맛 뿐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니 이 세상에 빠져 있다 보면 매사 감흥이 없고 무감각하게 변합니다. 밖의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 뿐만 아니라 내가 타인이나 다른 존재에게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 또한 그렇게 변합니다. 

이것은 나를 둘러 싼 세상과의 관계가 점점 옅어지고 무의미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무너진 관계 속에 몸과 마음의 건강이 들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현대인들은 이전의 사람들보다 몸을 적게 움직입니다. 그러다 보니 순수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얻는 감각의 양이나 종류 그리고 즐거움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의식적으로 운동을 하고 아웃도어라이프를 찾아 떠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몸보다는 머리와 감정의 노동이 많아졌습니다. 

먹는 음식에서도 식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보다는, 양념이 만들어낸 인공의 맛에 길들여졌지요. 저는 이런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는 말이 ‘가상현실’이란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가상현실’ 이라니요. 왜 눈 앞에 펼쳐진 진짜 세계를 버리고 가짜 현실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걸까요. 

출처 : 애경산업 블로그

신체적 활동이 준 대신 스마트폰과 컴퓨터로부터 받는 자극은 엄청 늘어났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화면의 글자나 그림 혹은 영상만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훨씬 더 많은 정보들이 눈과 귀로 들어와 뇌를 흥분시킵니다. 거북목과 같은 증상 뿐만 아니라 신경계의 과부하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또한 그런 것들을 통해 접하는 정보의 질도 문제입니다. 다양한 듯 보이지만 그 내용이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그것을 접하는 사람 그 정보들에 길들여지고 세뇌 당하게 됩니다. 얄팍한 정보들이 일으키는 말초적인 자극들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이유도 모른 채 예민하고 피곤하고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무식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겁니다.  

진료를 하면서 이 예민함과 피로는 결국 둔감해지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화투를 매일 치는 것이 치매 예방에 별 효과가 없는 것처럼 같은 자극의 반복은 더 이상 뇌에 흥미를 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둔감함은 어쩌면 너무 과도한 자극으로부터 살아 남기 위한 뇌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각이 둔해진 환자들에게서는 이 상태에 빠진 환자들에게서는 생기가 없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매사에 시큰둥하거나 때론 아주 사소한 것에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하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상태를 그냥 정상이라고 여기며 삽니다. 당연히 병이 잘 날 수 밖에 없고, 잘 낫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걱정스러운 점은 이런 문제들이 앞으로 심해질 확률이 높다는 점입니다. 현대인이 컴퓨터와 스마트폰 그리고 인터넷을 포기하는 것은 아마도 더 나은 도구가 생기거나 엄청난 재앙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렇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여러분과 만나고 있고요.   

출처 : SK텔레콤

우리는 자극의 홍수 속에서 삽니다. 그런데 이 자극들은 뭔가 결핍이 느껴집니다. 집밥과 상업음식이 다른 것처럼 말이죠. 맛있어 보이지만 계속 먹으면 맛있는 줄도 모르고 건강도 나빠지는 것도 비슷합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집밥과 같은 자극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극을 과거의 사람들이 해왔던 일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창하게 구석기,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100년 정도만 전으로 가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종이책을 읽는 것은 미친 듯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삶을 속도를 조정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책읽기 운동을 펼치는 것에는 어쩌면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고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에서 얻는 순수한 즐거움, 가공되지 않은 식재료에서 느끼는 맛과 향, 흙을 밟고 자연을 접하는 감촉, 인위의 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나 고요함 같은 것들이 집밥 같은 자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민해지고 지친 현대인의 마음과 몸에는 이러한 자극들이 가장 좋은 약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현대인들이 자연인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일상의 자극들은 없앨 수도 피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가능한 줄이고, 유해한 자극 때문에 받은 상처를 회복하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어느 휴대전화 광고처럼 잠시 그 자극들을 끄고, 잃어버린 감각을 일깨우는 건강한 자극들과 만나는 시간을 만드세요. 치유는 거기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형찬 원장은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바뀐다는 신념을 가지고 서울 명륜동 다연한의원에서 환자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썼습니다. 본 칼럼의 내용은 유튜브 채널인 <암환자생활교실>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com/@ohkin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