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에게 차와 커피 괜찮을까?

여러분의 인생 커피는 언제였나요? 저의 인생 커피는 25년전 여름이었습니다. 그 해 여름 저는 고향친구와 함께 20킬로가 되는 배낭을 메고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데 비가 내렸어요. 다행히 침수는 되지 않았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옷은 물론이고 온몸이 다 축축하고 관절이란 관절은 다 삐걱댔습니다. 

겨우 일어나서 저녁밥이 눌어붙어 있는 코펠에 물을 끓여 커피믹스 2봉지를 타서 친구와 나눠 마셨습니다. 때마침 산안개가 거치면서 정말 눈앞에 장관이 펼쳐졌어요. 그런데 그 순간 눈이 마주친 친구와 저는 서로를 마주보며 아주 깔깔대면서 웃었습니다. 왜그랬는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테리입니다. 하지만 그 때 마셨던 커피 한잔은 제 인생커피가 되었고, 빨간봉지에 담겨있던 커피믹스는 특별한 의미가 되었습니다. 

30대 때는 차에 빠졌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언제고 내 차밭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만난 차밭에서 우연히 나무아래 떨어진 씨앗을 발견했어요. 마치 목화씨를 붓대롱에 감춰온 문익점과 같은 심정으로 차씨를 주워 왔습니다. 본가의 텃밭 한구석에 정성 들여 심고는 싹이 트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한달이 지나도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밭을 갈아야 하니 결정을 하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5월의 어느날 아침 정말 차싹이 하나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와우!!! 유레카! 그날 이후로 여기 저기서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작은 저만의 차밭이 생겼습니다. 본가가 차나무의 북방한계선 위에 있었기 때문에 겨울에 죽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차나무는 꿋꿋이 견디면서 자랐습니다. 

8년차 되던 해, 드디어 첫 수확을 했습니다. 새벽에 나가 적당한 크기의 찻잎을 따서 대나무소쿠리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가스렌지에 작은 쇠솥을 올리고는 차를 덖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덖을 때, 솥에서 찻잎이 구르던 소리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열기가 빠지기를 기다려 차를 우려 마셨습니다. 아~ 정말 감동이었어요! 그 이후로 비싸고 유명하다는 차도 마셔봤지만 언제나 저의 인생차는 그 날의 차입니다.

차씨를 심고, 여러해를 기다렸다가 찻잎을 하나하나 따서 덖어서 마시면서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어요. 최고의 경험이란 비싼 돈을 지불하고 남이 다 해준 것에 숟가락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를 온전히 알고 맛보고 그것과 관계를 맺는 것이 좋은 경험이고 배움이고 나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차와 커피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그와 관련된 여러 추억들이 떠올라서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개와 고양이가 반려동물계의 양대산맥이라면 차와 커피는 현대인의 음료의 쌍벽을 이룹니다. 그리고 개와 고양이의 집사들이 보이지 않는 경쟁과 파벌이 있는 것처럼, 차와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도 은근한 자존심 싸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를들면 “니들이 이 맛을 알아?” 하는 것이죠.  

건강에 관한 뉴스를 보다보면 차와 커피의 유익함과 유해함에 관한 연구 기사들이 주기적으로 나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차와 커피 관련해서 움직이는 자본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구 결과인지 용역보고서인지 그 성격이 모호한 기사들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길가에 자라는 잡초도 저렇게 연구를 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불로초가 되거나 때론 독약처럼 보이지 않을까? 

우리는 누군가의 노력으로 다 만들어진 제품을 마시기 때문에 찻잎도 커피빈도 모두 하나의 생명이고 식물이다는 것을 잊곤 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많이 비슷하고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그 다른 것을 보고 이것이 좋다, 저것은 나쁘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같은 점이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렇게 하나하나 밝히고 알리지 않는 것은 그 과정에 많은 돈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본시장은 수익을 내지 않는 곳에는 돈을 쓰지 않는 법이죠. 농담이 아니라 만약 봄이 되면 여기저기서 꽃을 피우는 민들레에 관해 차와 커피에 쏟는 것 만큼 비용을 들여 연구와 홍보가 이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차밭과 커피밭은 갈아 엎어지고 도처에 민들레밭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실험실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들은 차와 커피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습니다. 대체로 이런 이런 성분이 있어서 건강에 좋다, 어떤 병을 예방한다는 내용이지요. 하지만 가끔은 마시면 죽는 독약처럼 표현되기도 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런 건강의 문제 때문에 차와 커피를 마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가장 큰 이유는 습관이 아닐까 합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차와 커피는 대표적인 기호식품입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죠. 그런데 음식도 마찬가지지만 사람들은 꼭 건강에 좋은 것만을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해가 된다고 해도 그것을 먹고 마셔서 얻는 즐거움이 크다면 기꺼이 그 위험을 감수합니다.  

기호식품의 공통점은 중독성입니다. 사람들은 차와 커피를 마실 때 맛과 향, 이래서 건강에 좋다든가 때로는 멋과 정신적 효과와 같은 각자 다양한 이유를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것들을 즐기는 것은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 어른들은 ‘인이 박혔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뭐 좀 부드럽게 표현하면 길들여졌다고 말할수도 있을 겁니다. 

기호식품 중에 술과 담배는 중독이 되면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기 쉽습니다. 그래서 금주와 금연을 돕는 치료를 하기도 하죠. 하지만 차와 커피는 중독되었다고 해도 웬만하면 치료의 대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 중독이 술과 담배만큼 치명적이진 않기 때문일겁니다.  

우리가 이런 기호식품에 중독되는 이유는 그 안에 들어있는 특정한 물질에 신경계 특히 신경계의 총사령관 역할을 하는 뇌가 길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차와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신경계의 각성물질이죠. 그래서 피곤하고 머리가 멍하면서 무기력할 때 마시면 정신이 나는 느낌이 듭니다. 신경계가 반짝하고 깨어나기 때문이죠. 

그런데 카페인 그 자체는 일종의 독입니다. 실제 우리 몸의 해독기능을 테스트 할 때도 일정량의 카페인을 섭취했을 때 그것을 얼마나 빨리 처리하는가를 측정합니다. 카페인이 몸 속에 들어오면 해독시스템은 이것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합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신체기능을 활성화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일종의 동종요법인 셈이죠.  

차나 커피를 마시면 소변을 자주 보는 것 또한 이런 해독작용의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전에는 하루 몇잔을 마시거나 심지어 밤에 마셔도 잠을 잘 잤는데, 
최근 들어 같은 양의 차와 커피에 수면이 영향을 받는다면 본인의 해독능력이 떨어진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합니다.  

문제는 신경계의 각성에도 해독기능의 활성화에도 에너지가 쓰인다는 점입니다. 저는 차나 커피를 과하게 마시는 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지금 환자분은 미래에 쓸 에너지를 미리 당겨 쓰고 계십니다. 마이너스 통장을 쓰는 것과 같아요.” 라고 말이죠. 잔고를 채우지 않고 계속 대출을 받으면 대출원금과 이자가 불어나서 결국 파산을 하죠. 

과도한 카페인 섭취도 마찬가지입니다. 카페인을 통해 에너지를 끌어다 쓴 후에는 휴식을 통해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재충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피로와 긴장의 누적으로 만성피로나 번아웃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깨져서 툭 하면 화와 짜증이 나고 감정기복이 심해지는 증상도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카페인에 대한 감도가 점점 떨어집니다. 이전에 경험했던 수준의 각성상태를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양이 필요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더 많이 더 진한 차와 커피를 마시거나 때로는 고용량 카페인 음료나 약물에까지 눈을 돌리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저는 알코올 중독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치료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차와 커피를 과하게 마시는 분들에게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는 물을 잘 마시지 않는 점입니다. 저는 이런 환자들에게 “차는 차고, 물은 물이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차와 커피는 물이 아닙니다. 음료이고 음식에 가깝습니다. 위장에 들어가면 고형의 음식물 정조는 아니지만 소화반응을 일으킵니다. 또한 소변도 더 자주 보게 만들죠. 이런 점에서 차는 차처럼 마시고, 기본적인 수분 섭취는 맹물을 마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환자분들 중에 “원장님도 커피를 마시세요?”라고 묻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그럴 때면 “네~ 저도 커피를 마십니다.”라고 답하죠. 그러면서 “커피도 마시고, 차도 마시고, 가끔은 한약재를 우린 약차도 마십니다.”라고 덧붙입니다. 저는 차와 커피에 대해 일편단심이 아닙니다. 왔다리 갔다리 하는 일종의 박쥐입니다.  

이제부터 왜 제가 박쥐가 되었는지에 관한 변명을 해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차와 커피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맛과 향입니다. 요즘에는 여기에 하나 더해집니다. 바로 브랜드 스토리입니다. 원산지는 어디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누가 만들었고, 어떤 유명한 사람들이 즐겨 마시고와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우리가 명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이렇게 탄생하죠. 제품에 씌워진 이미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꺼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요술을 부립니다. 스페셜티 원두가 유행하고, 한편에 수백,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차가 팔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차와 커피에서 그런 이미지를 걷어내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어떨까 매우 궁금합니다. 어쩌면 파리의 심판만큼이나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아! 물론 제가 뭘 몰라서 하는 말일수도 있습니다. 신포도처럼 말이죠.   

하지만 제가 박쥐가 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차와 커피가 일으키는 몸의 반응 때문입니다. 차와 커피를 마실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맛과 향, 제품의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마시는 공간의 분위기 일 겁니다. 하지만 환자를 치료하는 입장에서 보면 조금 다릅니다. 아마 이런 차이는 제가 몸 안의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의학을 전공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커피와 차는 둘 다 각성효과를 내지만, 그것이 몸속에 들어왔을 때 만들어 내는 흐름은 완전 다릅니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을 쥐어 짜듯해서 내부의 흐름을 위로 밀어 올립니다. 마치 뇌에 카페인을 주입해서 강하게 각성시키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차는 이와 반대로 흐름을 아래로 끌어 내립니다. 탁한 것을 아래로 가라 앉히면서 아래로 떨어지는 힘을 이용해서 머리로의 흐름을 활성화시킵니다. 시소의 한쪽을 올리는데 그쪽을 밀어 올릴수도 있고, 반대쪽을 내릴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차와 커피의 차이를 느끼다 보면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는 해와 바람의 시합같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큰 흐름은 이런 차이가 있지만 차와 커피의 종류에 따라 각기 세부적인 길과 작용하는 부위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입니다. 차를 마시면 녹차와 백차 그리고 우롱차와 잘 익은 보이차가 가는 길이 조금씩 다르고 반응하는 부위도 각기 다 다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차와 커피를 다양한 방식으로 만든 것은 단순히 그 맛과 향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차와 커피가 우리 몸안에 만들어 내는 흐름의 차이를 경험하고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을 일정하게 구현하는 방법을 연구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지금은 제품의 이미지와 이야기와 맛과 향만 남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차와 커피에서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의 몸과 마음의 흐름을 그 사람에게 맞게 조정해 줄 수 있다면, 차와 커피는 그 자체로 훌륭한 약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런 중요한 것들을 잃게 되었을까요? 저는 그 이유 중 하나가 인간의 감각이 퇴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시켜 생각하는 물질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학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이제는 인간이 과학에 길들여지고 있단 생각이 듭니다.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먹는 음식은 식품공학에 맞추고, 몸의 움직임은 스포츠과학이 제시하는 방법을 따라 합니다. 사랑과 같은 감정도 호르몬이 만들어내는 환상으로 해석되지요. 병의 치유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더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또 절대 아닙니다. 

현대과학이 제시하는 틀에 맞춰 살면서 우리가 본래 갖고 있던 감각들은 날이 갈수록 퇴화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느끼기보다는 제공된 정보들과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에 중독되어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상태에 필요한 것을 생각해서 선택하기 보다는 좋다는 것 혹은 유명한 것에 나를 맞춥니다. 천천히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강요하거나 몰아붙이는 사회적 분위기 영향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아무리 좋다는 것을 구매하고 따라해도 어쩌다 운이 좋아서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경우를 제외하면 만족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럼 또 다시 내게 필요한 것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때도 역시 운에 맡겨야 하는 불행한 상황은 계속됩니다.  

환자들에게도 똑같이 벌어지는 이런 현상을 봅니다. 의료쇼핑이란 말은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상태를 보면서 현대인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뭔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퇴화한 몸과 마음의 본래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차가 필요할 때는 내 몸과 마음의 상태에 맞는 차를 마십니다. 살다보면 진한 커피 한잔으로 억지로라도 깨어 있어야 하는 절실한 순간도 있습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러고 난 후에는 미리 꺼내쓴 에너지를 재충전 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산패되지 않았다면 더 좋은 차 그리고 더 좋은 커피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내게 필요한 차와 커피가 있을 뿐이죠.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면 먼저 가만히 그리고 고요하게 내 몸과 마음을 들여다 보고 느끼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들뜨고 혼란한 상태에서는 휩쓸릴 수밖에 없습니다. 잃어버린 본래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차 한잔의 여유 그리고 커피 한잔의 낭만은 여기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형찬 원장은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바뀐다는 신념을 가지고 서울 명륜동 다연한의원에서 환자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썼습니다. 본 칼럼의 내용은 유튜브 채널인 <암환자생활교실>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com/@ohkin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