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해 제철음식을 먹어야 할 이유

안녕하세요. 한의사 김형찬입니다. 오늘은 루돌프 슈타이너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발도르프 교육의 창시자로 유명한데요. 인지학이란 학문을 만들어 냈고 또한 농업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슈타이너의 이론을 따라 작물을 키우는 것을 바이오 다이내믹 농업 우리 말로는 생명역동농업이라고 부릅니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이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작물은 맛과 영양에서 우수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슈타이너는 식물의 건강이 그것을 둘러싼 전체환경과 땅의 상태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봤습니다. 이런 생각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의 부조화에서 병이 생긴다고 보는 한의학과 비슷합니다.

1924년 겨울, 농한기를 맞아 슈타이너는 독일의 농부를 대상으로 농업 강의를 합니다. 그 때 한 사람이 질문을 합니다. 요즘은 왜 이전처럼 정신적으로 깨달은 사람이 적은지, 머리로는 이해하면서 실천에 옮기는 의지가 왜 이렇게 약한지 묻습니다. 이 사람은 인지학의 대가에게 뭔가 근사한 대답을 기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슈타이너의 대답은 그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립니다. “이 문제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먹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먹는 것은 정신을 물질에까지 나타나게 하는 힘을 사람에게 전혀 줄 수 없다. 생각하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마음을 내기가 어렵다. 요즈음 사람들이 먹는 곡식이나 채소 안에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기운이 들어 있지 않다.” 한 마디로 먹는 음식이 부실해서 인간의 정신이 쇠퇴하고 의지가 약해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이 말에 상당히 공감합니다. 

1915년, 암모니아 합성에 성공하면서 화학비료의 시대가 열립니다. 질소비료로 대표되는 화학비료의 생산과 함께 식량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지요. 하지만 이와 함께 양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질적으로는 저하된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슈타이너는 아직 본격적인 화학농업이 시작되기도 전인 1924년에 먹는 음식에 사람이 필요로 하는 기운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철도 모르고 생산되는 겉모습만 그럴싸한 현대의 음식을 본다면 슈타이너는 호모사피엔스는 끝났네요~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가공식품은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가공식품은 본래 식재료가 갖고 있던 약간의 영양마저 생산과정에서 잃습니다. 때로는 해가 되는 성분이 더해지기도 합니다. 가공식품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해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만 너무나 편리하고 결핍된 영양을 가리기 위한 더해진 화려한 맛의 치명적 유혹을 우리가 얼마나 이겨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제가 이전에 이야기했던 ‘우리는 왜 단짠에 쉽게 중독되는 걸까?’편을 참고 하셔도 좋겠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요즘 유행하는 일 년 내내 어쩌면 평생 매일 사과와 당근과 같은 과일과 채소를 먹는 것이 옳은 것일까? 에 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쓰는 말 중에 “게미있다”란 표현이 있습니다. 처음 들어본 분도 계실텐데요. 이전 어른들이 쓰던 사투리입니다. 이 말은 먹방에서처럼 음식이 입에 들어가면서부터 눈이 휘둥그레지며 우와! �ダ獵�!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을 쓸 때는 식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과 향이 잘 느껴지고, 처음엔 잘 모르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을 때입니다. 첫맛은 확 끄는데 몇 번 먹으면 그저 그렇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맛이 없어지는 요즘 음식과는 정반대의 느낌이이지요. 

저는 이 ‘게미’란 말이 ‘기미氣味’에서 왔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식재료가 가진 맛 뿐만 아니라 그 고유의 기질 혹은 에너지를 함께 담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슈타이너가 이야기한 사람에게 필요한 기운과 통하는 말이지요. 

‘기미’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작물이 자란 환경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공산품처럼 기계로 찍어낸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입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는 그 주변환경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같은 삼이라도 산중에서 자란 산삼과 밭에서 재배한 인삼이 다른 것은 그 환경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꽃도 온실 속의 화초는 그 향이 확 피었다가 사라지지만, 야생화는 그 향이 은근하고 오래 멀리 퍼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맹모삼천지교와 귤이 위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속담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 물론 이 모든 것은 생명체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취한 전략이라고 해석할수도 있습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서 그 생명을 취하며 살고 다른 생명체의 생존과 번식을 돕는 방식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똑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철은 그 맛과 향은 물론이고 식재료의 생명력이 가장 왕성하고 활력이 넘치는 때입니다. 앞서 말한 ‘게미’ 있고 ‘기미’가 뛰어난 시기입니다. 영양은 물론이고 슈타이너가 말한 우리를 고양시킬 수 있는 힘을 그나마 일정정도 품은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철이라고 해도 그 힘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식재료는 많지 않습니다. 자연의 것을 채취하는 시절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입니다. 팔기 위해 대량으로 농작물을 재배한 이후로 그 힘은 한단계 낮아졌고, 화학비료의 등장으로 또 한단계 낮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제철도 이런 판국에 제철이 아닌 시기에 인공적인 힘을 빌어 생산되는 작물이나 장기간 보관된 식재료는 겉모양은 비슷해 보일지라도 공갈빵처럼 힘이 빠졌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그런 것을 건강을 위해 일년내내 먹는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제철음식을 먹는 것은 이 외에도 다양한 장점이 있습니다. 일단 그 생산량이 많고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신선하고 그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합니다. 또한 대량생산의 종목이 아닌 우리가 오랫동안 먹어온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먹을 수 있다는 점 또한 제철음식의 장점입니다.

눈을 감고 여러분이 최근 한달동안 먹은 음식의 종류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아마 그 음식 속 식재료의 단순함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시장의 원리에 의해 대형마트의 상품이 되지 못하고 적은 양이 생산되거나 채취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계절의 감각을 잃지 않아야 찾아 먹을 수 있는 것들이지요.

그래서 저는 환자들에게 산지의 재래시장이나 생산자와 유대가 튼튼한 협동조합 그리고 로컬푸드 매장을 이용하길 권하는 편입니다. 내가 먹는 음식의 다양성은 미식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 몸 속 생태계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대량생산 되는 상업화된 작물은 반복된 교배를 통해 모양이 크고 생산량이 많고 맛이 좋은 방향으로 변했습니다. 우리 입맛에 맞게 바뀐 것이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미’중 맛만 남고 기운은 사라진 맹탕 같은 작물들도 등장했습니다. 저는 이 현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 브릭스로 표현되는 단맛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릴 적 먹었던 사과와 귤에서 느꼈던 ‘게미’는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모든 과일이 모양은 다른데 맛은 다 비슷해진 느낌입니다. 현대인의 개성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다 비슷한 음식을 먹어서는 아닐까도 싶습니다.

사람의 입맛에만 맞게 바꾸다 보면 작물의 건강도 위험해집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나나입니다. 식량학자 바빌로프의 이야기를 다룬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보면 식물들이 원산지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그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인간의 입맛에 길들여진 품종만 살아남기 때문이죠. 종의 특성과 본래의 야성을 잃은 식재료들로 만든 음식이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힘을 충분히 키워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제철음식을 먹어야 하는 또 이유는 에너지 때문입니다. 자연이 만들어 준 환경에서 자라는 제철 식재료는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적습니다. 하지만 제철이 아니라면 그 생장조건을 맞추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합니다. 식재료를 장기간 보관하는 것도 마찬가지요. 그 영양이 신선한 제철 식재료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에도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가장 위태롭게 만드는 기후위기의 본질이 에너지 문제라는 것은 모두 잘 아실겁니다. 따라서 가능한 외부 에너지 투입을 줄이는 방식으로 작물을 키우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우수한 식재료를 얻는 것 뿐만 아니라 크게 보면 인류 전체를 살리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이상해진 자연이 본래의 리듬을 회복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보면 탄소발자국을 많이 남기는 수입 농수산물은 가능하다면 적게 먹는 것이 좋겠지요.

요즘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건강을 위해 특정한 식재료를 매일 먹으라던가 거기서 추출한 물질들을 복용하라는 정보들이 유행입니다. 이런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바탕이 되는 음식들마저 마치 통증에 진통제를 복용하고 열이 날 때 해열제를 먹는 것과 같은 대증약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저는 우리가 먹는 음식에는 실험실에서 식품공학적으로 규명된 영양성분뿐만 아니라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 슈타이너가 기운 혹은 힘이라고 부르는 것이 함께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 또한 물질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미량 원소들의 집합일 수도 있습니다. 작물이 자라면서 주변 환경의 상황에 맞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축적하고 만들어 낸 물질들이 있을테니까요. 사람도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가에 따라 성질이나 기질이 때로는 체질까지 달라집니다.

우리가 먹어야 하는 것의 기본은 특정 효과를 지닌 식품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음식입니다. 제철 식재료로 만든 제철음식을 식사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식탁 위에 실험실 의 영양성분이 아니라 시간의 힘을 담은 생명을 올리는 것은 내 건강을 물론 나를 둘러싼 환경을 함께 살리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홍길동전의 유명한 허균이 쓴 글 중에는 <도문대작>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도문대작은 고깃집 앞에서 크게 씹는 흉내를 낸다는 뜻인데요. 귀양살이를 하면서 자신이 맛보았던 맛있는 음식을 상상하는 허균 자신의 모습이 딱 그랬을 겁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외가인 강릉에서 먹은 방풍죽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른 봄, 방풍의 새순으로 끓인 죽의 맛과 향이 너무 좋아서 그 향기가 사흘이 지나도 입안에서 가시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다분히 과장이 섞인 표현이겠지만, 읽을 때마다 제철음식의 힘이란 이런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한국인에게는 새해 계획을 세울 기회가 두 번 주어집니다. 양력 1월 1일과 설날이죠. 올해 특정한 채소나 과일을 일 년 내내 먹어야겠단 생각을 했다면 그 계획을 지우세요. 그 정성과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 로컬푸드 매장에 가서 제철 식재료를 사서 제철음식을 해 먹기로 바꾸시기를 권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형찬 원장은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바뀐다는 신념을 가지고 서울 명륜동 다연한의원에서 환자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썼습니다. 본 칼럼의 내용은 유튜브 채널인 <암환자생활교실>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com/@ohkin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