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과일만 먹으면 우리는 건강해질까?

오늘은 얼마전 만난 환자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그 환자는 바로 서고 걷는 힘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회복을 위해서는 체력과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걷고 서는 방식과 생활습관에 대해 상담하다가 환자가 완벽한 채식주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약화되고 굳어있는 몸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채식만으로는 힘들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식생활의 변화를 줄 것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분은 채식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했지만, 설득에 실패했습니다. 그 상태에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했지만, 지금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물론 제 판단이 잘못된 것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방식으로 해답을 찾지 못했다면 과감하게 변화를 주는 것도 치유를 위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채식 위주의 건강한 잡식이 건강을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초식동물도 아니고 육식동물도 아닌 잡식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간은 어느 한 시대도 채식만 혹은 육식만을 고집하면서 살진 않았습니다. 

특정한 식사법이 마치 현대인의 모든 건강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란 주장은 환상에 가깝습니다. 그랬다면 그렇게 먹은 사람들만 남아 우리의 조상이 되었겠지요. 지금도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인류는 늘 배고픔이란 위협을 안고 살았고, 그런 상황에서는 뭐든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먹었을 것입니다. 각기 처한 환경마다 얻을 수 있는 식재료 또한 달랐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도 다양한 방식의 적응과 진화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에 관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건강이라는 것이 먹는 것 만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큰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채식위주의 건강한 잡식은 제가 도달한 하나의 결론입니다. 

최근 들어 환자분들 중에 채소 과일식에 대해서 묻는 분들이 부쩍 많습니다. 그러면서 자주 듣는 이야기는 살아있는 음식이란 말입니다. 이 말은 앞서 채식주의 환자에게서도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때 저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채소와 과일은 채취된 순간부터 죽기 시작한다고, 살아있는 음식이란 말은 환상과 같은 것이라고 말이죠. 정확하게 표현하면 죽어가고 있는 음식이란 말이 맞을 겁니다. 채취되는 순간부터 저장과 보관을 위한 처리를 하지 않으면 자체 효소에 의해 분해되기 시작할테니까요. 그것이 잘 이루어지면 우리는 발효라고 부르고 못 먹을 지경이 되면 썩었다고 표현합니다. 

채소 과일 중심의 식사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구석기 식단부터 황제다이어트 원푸드 다이어트까지... 건강에 좋다는 식사법은 늘 유행이 있었고, 마치 떴다방처럼 한시절을 풍미하다 사라졌습니다. 앞서서도 말씀드렸지만 완벽한 식사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럼 최근 유행하는 채소과일식으로 건강상의 효용을 보는 사람들은 왜일까요? 그것이 환자분들의 이야기처럼 살아있는 음식이나 효소 뭐 이런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효소 또한 우리 몸에 들어오면 소화가 되기 마련이고, 모든 생물은 각자에게 필요한 효소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과와 인간의 효소시스템이 동일하진 않겠지요. 

이 식사법의 가장 큰 장점은 아니러니 하게도 우리가 익히지 않은 채소와 과일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정한 영양의 흡수는 일어나지만 그 효율이 떨어집니다. 좀 더 확장하면 익힌 음식과 생식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날 것을 잘 소화시키지 못합니다. 음식을 익혀 먹기 이전, 오랜 세월동안 인간은 어떻게든 날음식을 소화흡수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각종 소화효소는 물론이고 한정된 공간에 위장을 구겨 넣어서 어떻게든 소화를 위한 표면적을 넓히는 쪽으로 진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귀여운 푸바오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먹고 소화시키는데 쓰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대표적인 초식동물인 소는 위를 여러개 만드는 것도 부족해 되새김질까지 하죠. 그 정도로 날것을 소화시킨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식사시간이 짧아진 것은 음식을 익혀 먹는 영향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또한 인류가 지금처럼 큰 뇌를 가진 존재로 진화하는데 필요한 동력은 음식을 익혀 먹는 화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죠. 

같은 양의 날 채소와 과일을 먹으면 포만감을 느끼는 것에 비해 소화흡수할 것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열량제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당연히 살도 좀 빠지겠지요. 또한 소화흡수가 잘 일어나지 않고 빠져 나가는 것이 많으니 배출이 잘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섬유질이 풍부하니 우리 장은 그것을 소화시키려고 부단히 애를 쓴 결과입니다. 갈거나 잘게 부수지 않고 원물 형태로 씹어 먹으면 이런 효과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현대인의 생활습관이 만들어낸 대표질환이 바로 대사증후군입니다. 영양은 결핍된 칼로리 중심의 식사와 신체활동의 감소 그리고 따른 위장기능의 저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생식이 가져오는 유익한 점은 일정부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식사법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채소과일즙으로 암환자를 치료했던 거슨 요법이나 조지 오사와의 마크로바이오틱 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는 이런 식사법의 공통점은 건강한 식재료의 유익함과 함께 열량제한 효과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수입이 줄어들면 살림을 알뜰하게 하듯, 우리 몸은 열량이 부족해지면 성장과 생식 보다는 세포수준에서부터 모든 기능을 생존에 집중시킵니다. 뭔가 특별한 것이 들어와서 병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이런 변화가 암과 같은 중한 질병이나 현대인의 대사와 관련된 증상들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병적 상태라는 전쟁상태에 유익합니다. 전쟁이 끝나면 평화로운 시기를 위한 전략으로 바꿔야 합니다. 전시의 전략이 평시에도 유지된다면 우리는 늘 전쟁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극단적인 전략일수록 반대급부도 큽니다. 채소과일식이나 거슨요법 그리고 마크로바이오틱과 같은 식사법들을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과 청년들처럼 성장이 필요한 시기에는 유익함보다 해로움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처드 랭엄이 그의 책 <요리본능>에서 언급한것처럼 생식의 가장 큰 단점 중의 하나는 생식능력이 떨어지는 점이라고 했던 것도 유념해야 할 부분입니다. 아이를 갖길 바라는 부부에게는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소화력이 떨어진 노년층에게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흡수보다 배출이 많다면 곤란할테니까요. 

따라서 저는 채소과일식이나 거슨요법 그리고 마크로바티오틱과 같은 생존을 위한 식사법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하고 다시 우리가 일상으로 먹는 건강한 집밥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철식재료 중심으로 한 집밥과 채식의 비율을 높인 잡식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식사입니다. 우리가 먹어야 하는 것은 제대로 된 음식이지 식품이 아닙니다. 

음식을 차릴 때 중요한 것은 식재료의 건강입니다. 육식과 유제품의 유해함은 많이 먹어서도 그렇지만, 그것이 생산되는 방식과 동물이 살고 있는 환경의 영향도 큽니다. 식재료의 건강은 채소과일도 마찬가지겠지요. 특정 채소과일을 장기간 먹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이유 중의 하나가 제철이 아니라면 그 영양이 부실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겉은 멀쩡해도 맛과 향이 없는 채소과일이 얼마나 많은지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재배와 보관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변화의 본질은 에너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영양이나 에너지의 관점에서 보면 외국에서 들어온 식재료는 가능한 적게 먹어야 할 것입니다. 

된장, 고추장, 청국장과 간장 그리고 김치와 같은 전통적인 발효식품을 좀 더 즐겨 먹고, 가공식품은 줄여야 합니다. 배달음식과 외식을 선택할 때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겠고요. 그리고 40대 이후라면 먹는 양 자체를 조금 줄이면 좋을 것입니다. 조금 부족한 듯 먹는 지혜가 중년 이후로는 필요합니다. 

전통적인 장수지역인 지중해연안, 히말라야의 훈자지역 그리고 오키나와를 연구한 결과들을 보면 뭔가 특별한 음식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채소과일만 먹었다는 기록도 없지요. 자신이 사는 지역과 인근에서 사는 신선하고 건강한 제철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는 것, 몸을 움직이는 것을 즐겨 하는 것 그리고 가족, 이웃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사는 것이 장수한 사람들의 공통점이었다고 합니다. 

뜻하지 않게 오래 살게 되었지만 현대인의 삶은 불안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뭔가 도움이 되는 것을 먹고 해로운 것을 피하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지요. 

좋은 건강은 특정 식품이나 식사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방식은 우리가 병이 있을 때 약을 먹는 것처럼 나에게 맞는 것을 선택해서 잠시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제대로 된 음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좋은 건강은 너무 느슨해서도 안되지만, 불안과 강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음식의 기준은 제철식재료 중심의 건강한 집밥 그리고 채식 위주의 잡식입니다.

* 김형찬 원장은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바뀐다는 신념을 가지고 서울 명륜동 다연한의원에서 환자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썼습니다. 본 칼럼의 내용은 유튜브 채널인 <암환자생활교실>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com/@ohkin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