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결과입니다

과거에는 일반 로컬 한의원에서 암환자분을 만나는 일이 드물었지만, 지금은 암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거나 표준치료 후 경과를 추적관찰 하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암발생에 관한 통계를 봐도 현대인에게 암은 더 이상 특별한 병이 아니라 흔한 병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암은 한 가지 질병이 아니라 서로 다른 다양한 암들에 관한 총칭입니다. 200종류가 넘는 암이 있다고 알려져 있죠. 우리를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다른 거처럼, 암 또한 종류에 따라 고유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 차이는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은 각자의 역할에 맞게 분화합니다. 예를 들면 음식물이 지나는 길에 있는 입과 식도와 위 그리고 소장과 대장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은 서로 다 다릅니다. 세포가 하는 일과 세포가 노출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맞게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분화한 것이죠. 이것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진화의 과정을 통해 얻게 된 특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다른 역할을 하는 다양한 세포들에서 서로 다른 암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왜 정상세포는 암세포로 변화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관해 자세한 설명들은 많이 나와 있고, 잘 알고 계실 것이므로 여기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보겠습니다.

저는 인간의 몸이 외부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하나의 생태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몸이 어떤 고정된 실체라고 여기고 삽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라고 알고 있는 사람 속에는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도 있고, 이보다 더 많은 수의 장내 세균도 있고, 피부 표면에 살고 있는 피부 표재균도 있고, 숨 쉬는 공기와 음식물을 통해 공기와 음식물 외에도 바이러스와 세균도 함께 들어오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내 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말 많은 생명체가 함께 살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움직이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생명현상은 이런 다양하고 수 많은 생명체들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만들어낸 결과물 입니다. 이 모든 것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지는데, 만약 우리가 다 보고 느낄 수 있다면 살아 있는 매 순간이 빅뱅 만큼이나 엄청난 사건일 겁니다.

우리 몸은 이런 다양한 반응들 속에서도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체온, 혈당, 호르몬과 혈액의 삼투압과 pH 등. 생명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몸 속 생태계가 일정한 환경을 유지해야 하고, 이것을 생물학에서는 항상성 이라고 부르죠.

건강하다는 것은, 항상성이 잘 유지되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이 제 할 일을 정상적으로 잘 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다 보면 생태계의 균형이 깨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병이라고 부르죠. 일시적인 불균형은 시간이 지나면 자체적으로 해결이 되기도 하고, 단기간의 약물이나 치료를 통해 회복됩니다.

문제는 생태계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을 받거나 불균형한 상태가 장기화 된 경우입니다. 난치병이나 암은 주로 이런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우리 몸의 자체적인 회복력으로 도저히 원상복구가 되지 않을 때 암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했을 때 그곳에 투입되었던 사람들에게서 발생한 암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방사선 외에도 단기간에 고농도로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에 노출되면 개인차는 있지만 많은 경우에서 암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많은 암은 만성적인 손상의 축적이 원인이 되어 발생합니다. 빗물통에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1000방울 까지는 넘치지 않다가 1001방울째 비로소 넘치는 것처럼 말이죠.

발암물질이라 부르는 물질적인 요인 외에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내가 살고 있는 환경에서 노출되는 유해한 요소들이 지속적으로 우리 내부의 생태계를 교란시킵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지만,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손상이 10년 20년 30년 이렇게 쌓이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면역계의 감시를 벗어난 돌연변이 세포들이 성장해 암이란 병을 만들게 됩니다. 가족력과 같은 유전적 요인과 노화라는 피할 수 없는 요인들이 작용하면 더 쉽게 암이란 전등에 불이 들어오겠지요.

그런데 이런 결과는 조금 관점을 달리 해서 보며 암은 우리 몸이 나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버틴 결과로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그것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 애씁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버텨낼 수는 없습니다. 손상을 많이 받은 부분이나 유전적으로 약한 부분부터 구멍이 나면서 기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와 함께 이야기한 항상성의 대표적인 영역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체온, 혈당, 호르몬과 혈액의 삼투압과 pH가 세포의 좋은 기능을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하기 시작합니다. 아베 도오루가 말한 암의 발생환경이 저산소, 저체온의 상황이 대표적이죠. 인슐린저항성과 만성염증 그리고 대사증후군 또한 같은 상황에 대한 표현입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은 세포의 물리적 구조의 건강성과 함께 세포 내외의 화학적 환경이 일정할 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진화 속에서 설계되었습니다. 항상성이 무너지고 세포를 둘러싼 환경이 나빠지면 세포 수준의 문제는 증가하고, 이것을 복구하는 기능은 저하됩니다.

범죄율이 증가하면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생기는 것처럼, 증가하는 세포의 오류와 결함을 면역계가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게 되고, 이 불완전함의 축적이 결국 암이란 결과물로 나타나게 됩니다.

만약 작은 오류에도 경고등이 울리며 작동을 멈추는 기계처럼,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들이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들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처리한다면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은 아직 그 정도 수준까지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처리하지 못한 문제들을 적당히 방치한 상태에서도 몇십년은 살 수 있었고, 그것이 인간종의 번성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산업화가 진행되고 급속하게 평균수명이 증가하게 되면서 이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마치 쓰레기 매립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미처 처리 하지 못하고 쌓아 둔 문제들이 다양한 형태의 병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죠. 암 또한 그 중 하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산업화가 만들어 낸 다양한 화학물질과 환경의 파괴는 암 발생의 위험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어찌보면 암의 증가는 문명과 장수가 가져온 부메랑 효과라고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암은 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긴 적응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암의 발생확률을 줄이고 표준치료 후 암의 재발을 방지하려면, 우리 몸이란 생태계를 이해하고 그 환경을 좋은 상태로 만들고 유지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암이란 드러난 결과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좀 더 초점을 좁혀서 한의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암 발생의 중요한 요인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형찬 원장은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바뀐다는 신념을 가지고 서울 명륜동 다연한의원에서 환자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썼습니다. 본 칼럼의 내용은 유튜브 채널인 <암환자생활교실>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com/@ohkin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