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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는 때
김형찬  |  windfarm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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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5  16: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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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는 때 

봄 그리고 가을
 

"여태 잘 견뎌내며 많은 일들을 해오셨죠. 그런데 폐경이라는 통과의례를 겪으면서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너무 없으셨어요. 지난겨울은 어머니 돌보느라 무리를 하셨죠. 그러니 봄이 되자 몸이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고 파업을 선언한 겁니다. '나는 갱년기 여성이야!'라고 정색할 필요는 없지만, 이 시기가 주는 의미를 충분히 음미할 필요는 있단 생각은 들어요."

금세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진료실에 들어선 분이 한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 냅니다. 자르고 이으며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이 분이 참 열심히 살아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집안의 궂은 일들을 본인이 다 도맡아 해왔는데, 이제 와 돌아보니 본인은 마치 빈 쭉정이가 된 듯하다고 합니다. 거기에 폐경이 시작되고, 이제 와서 힘들다·못하겠다 하면 그 동안 해 온 것 마저 아무 것도 아닌 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안팎으로 부대끼니 몸이 버텨낼 도리가 없습니다. 환자 삶의 궤도를 재정비할 때가 왔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여려가지 변화를 겪지만, 닮은 듯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사춘기와 갱년기라고 생각합니다. 폭발적인 성장의 정점에 있는 사춘기와 어느덧 노화라는 내리막에 있음을 절감하게 되는 갱년기는 계절로 치면 봄과 가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생식기능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남성에게는 갱년기가 크게 의미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남자는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철이 안 드는 지도 모르겠고요. 하지만 노화와 변화란 잣대를 대면 갱년기는 분명 존재하지요.   

사춘기에는 아래로부터 끓어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에 비해 부족한 경험치과 조절능력이 부대낌의 원인이 된다면, 갱년기는 이제 좀 알 것 같은데 야속하게 늙어가는 몸과 쉽게 내려오지 못하는 마음이 나를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물론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과 그 동안 살아온 시간이 이 시기의 난이도에 크게 영향을 주고요.

그런데 이전 어르신들은 갱년기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는 말을 종종 하십니다. 사는데 바빠 그런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 표면적 의미이지만, 어쩌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은 두드러지는 갱년기 증상인 폐경과 그에 따른 변화를 드러내는 것이 어려웠을 수 있겠단 생각을 합니다. 요즘에도 마치 여성으로서 삶이 끝난 것처럼 표현하는 분들이 있음을 보면 그러한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는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는 언뜻 보면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주로 건강이나 미용과 관련된 영역에서 나타나는데, 여성이 자신의 갱년기를 당당하게 드러내면서 나를 위해 무언가를 소비하는 형태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광고 속 장면들을 보면서 어쩌면 여성 갱년기가 상품화되는 건 아닌지, 사회가 갱년기 여성을 대우하는 척하면서 차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사람들의 인식 속에 치료하고 관리해야 할 무엇인가로 각인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 또한 다른 모습의 폭력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시기가 순조롭게 지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조절이나 치료가 필요한 분들도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갱년기 문제 해결을 단순히 신체적 불편감만 해소하는 데 초점을 둔다면, 이 시기가 주는 더 중요한 선물을 놓치는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합니다. 한번 쯤 다시 내 삶을 정비하고 새롭게 시작할 기회 말이지요.  

<논어>에서 공자가 나이에 따른 목표를 설정한 것처럼, 힌두교에서는 나이에 따른 인생의 단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10대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20대에는 결혼하고, 30대에는 행복한 가정을 일군 뒤, 40대에는 사회에 공헌하고, 50대에는 산으로 가라." 

과거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을 고려한다면 나이 대를 조금 뒤로 연장해도 되겠지요. 이 중 50대에는 산으로 가라는 것이 갱년기 이후의 삶에 대한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힌두교에서는 실제로 산으로 가서 수행자의 삶을 살라는 직접적인 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자연인’의 삶이 어쩌면 여기에 부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산은 가정과 사회와 조금 떨어진, 즉 보다 심도 있는 개인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동안 쌓아온 양적인 경험을 재료로 자신의 삶을 정련하고 조각해 질적으로 성숙한 삶의 방식을 택하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공자가 말한 지천명 또한 이와 상통합니다.  

물론 도덕책 같은 이야기 일지도 모릅니다. "10세는 과자에, 20세에는 쾌락에, 40세에는 야심에, 50세에는 탐욕에 움직인다"는 철학자 루소의 말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에 확 와 닿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목표는 조금 높게 잡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야 야심과 탐욕에 휩쓸려 나를 잃지 않을 확률을 키울 수 있습니다.   

앞서 상담한 환자에게 일단 일상의 습관에 조금 변화를 주면서 흐트러진 몸과 마음의 상태를 추스르는 치료를 하자고 했습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방향 설정을 할 만한 에너지가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연료가 채워지고 몸이 정비되면, 그 때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만을 위한 무언가를 시작해 보시라 했습니다. 그 스타트 선상까지 옆에서 돕겠다고 했지요. 

원고를 작성하다 잠시 차를 마시며 라디오를 듣는데 퀸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압박감은 나를 짓누르고 너를 짓누르지 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말이야.
압박감, 그것은 빌딩을 불태우고 가족을 둘로 갈라놓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지. 

우리 자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한 번 더 사랑할 기회를 주는 게 어때?

왜냐하면 사랑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사랑은 네가 밤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들을 돌볼 용기를 주고,
사랑은 너에게 우리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삶의 방식을 바꿀 용기를 주기 때문이야.
이것은 우리의 마지막 춤이야  
압박 아래서 말이야. 
 
 
본 칼럼은 프레시안에도 게재가 됩니다. 김형찬 원장은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바뀐다는 신념을 가지고 서울 명륜동 다연한의원에서 환자분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썼다. 암환자분들의 건강 회복을 돕는 해독 및 면역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02-742-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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