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풀어내야 암을 이겨냅니다. 울증

지난 시간에는 암은 적응의 결과물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 제가 생각하는 암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저는 암 발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요인과 외부요인입니다.

대표적인 내부요인으로는 유전자와 노화를 들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지만,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또한 노화가 진행될수록 유전자의 손상은 축적되기 쉽고, 이에 따라 암의 발생확률은 증가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외부요인 우리가 흔히 발암물질이라고 부르는 물질들이 대표적입니다. 이 외에도 기후나 피로와 감정적 스트레스처럼 우리 몸이 최적화된 기능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들이 영향을 줍니다. 암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것 외에도 앞선 시간에 말씀드린 항상성 유지에 방해되는 요인들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암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안과 밖의 요소들이 서로 어울려서 세포적 수준에서의 오류와 이것을 처리하는 면역계의 기능 사이의 균형이 깨지고, 이런 상황이 오랜기간 지속되다 보면 우리가 암이라고 불리는 질환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저는 이런 상황이 한의학에서 말하는 울증의 상태와 관련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울증鬱症이란 소통이 잘 되지 않고 답답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한의학에서 무엇보다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몸을 외부 환경과 소통하는 개방형 시스템이자 쉼 없이 변화하고 흐르는 역동적인 순환시스템으로 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 숨쉬는 공기 그리고 외부 자극과 기후변화에 맞춰 흐름을 조정해서 내부 항상성을 잘 유지하면 건강하고, 흐름에 문제가 생겨 더 이상 일정한 균형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 병이 난다고 봅니다. 실체화된 문제가 드러나기 전, 인체 내부의 흐름에 기능적 문제가 발생하고, 이것이 병의 발생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보는 것이죠.

이 흐름에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기’라는 개념을 상정합니다. 한의학에서 ‘기’라는 용어를 자주 쓰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암, 그 중에서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는 덩어리 형태를 띠는 고형암은 한의학의 적취積聚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의보감에는 적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의 흐름이 막히면 습이 쌓이고, 습이 쌓이면 열이 발생한다. 열이 몰리면 담이 생기고, 담이 쌓이면 혈의 흐름이 정체된다. 혈의 흐름이 막히면 먹은 것이 소화되지 않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몸속에 덩어리가 생긴다. 이 여섯 가지가 서로 원인이 되어 병을 만든다.

氣鬱而濕滯 濕滯而成熱 熱鬱而成痰 痰滯而血不行 血滯而食不消化 而遂成痞塊 此六者相因而爲病也』 - 동의보감 잡병편 권6 적취積聚 중에서 -

이 구절을 단순화 시켜 보면 기氣의 흐름에 이상이 생기면서 시작된 문제는 점점 습濕 - 열熱 - 담痰 - 혈血 - 식食과 비괴痞塊의 문제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이 여섯가지는 서로 원인이 되어 다양한 병을 만든다고 봅니다.

다시 이것을 순차적으로 풀어보면 어떤 원인에 의해 기의 흐름이 막히는 기울氣鬱의 상태가 발생합니다. 감정적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고, 먹는 음식이 그리고 운동부족 때문일수 있습니다.

순환이 잘 안되기 시작하면 몸속에는 습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마치 공기중의 습도가 높아지면 안개가 끼듯이 말이죠. 그리고 우리 몸은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순환시스템에 과부하를 걸게 됩니다. 저항이 있는 곳에 압력이 걸리니 열이 발생합니다. 염증이 생기면 붓고 열이 나는 것을 생각하면 쉬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소통이 되면서 습이 제거되고 울증이 풀리면 좋습니다. 그런데 부단히 애를 썼는데도 울증의 상태가 풀리지 않으면 이 때 발생한 열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마치 잼을 만들어지는 것처럼 대사산물과 노폐물은 축적되고 체액은 끈적끈적한 상태로 변합니다. 이것을 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요즘 말로 바꾸면 염증으로 대표되는 산화적 스트레스로 발생한 물질들이 다 처리되지 못하고 몸 속에 쌓이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습보다 유형화된 물질인 담은 혈액의 순환까지 방해하게 되고, 이로 인해 몸 속 장기들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외부에서 들어온 물질을 내 몸에 필요한 물질로 완벽하게 전환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러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적취積聚라고 표현하는 유형의 덩어리가 몸 속에 생기게 됩니다. 양성과 악성의 차이 그리고 장기의 특이성은 있겠지만 각종 고형암의 발생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원인이 되어 병을 만든다고 했으니, 실제 병이 생기는 것은 꼭 이런 순서대로는 아니겠지요. 어떤 이유에서건 시작된 악순환의 고리가 풀리지 않으면 결국 점점 더 중한 병으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에 답이 있는 것처럼, 이 악순환의 흐름을 끊고 좋은 흐름을 만들수만 정상적인 기능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병의 발생에 관한 설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또 있습니다.

첫째, 물질적인 형태가 없는 기의 흐름이 습열 – 담 – 혈- 적취 와 같은 유형의 병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점입니다. 한의학에서 병을 치료할 때 기의 흐름을 순조롭게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화를 내리고 담과 적취를 제거하는 것을 병의 상태에 맞게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둘째,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병은 실제로는 우리 몸이 스스로 문제를 부단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는 점입니다. 결과는 병이지만 그 과정은 생리적인 것이죠.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몸은 쉬지 않고 이런 노력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노력이 성공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실패가 누적되면 암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이런 몸의 노력을 알아주고 제 때 도와준다면 보다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관리의 핵심은 뭔가 특별한 것을 잠깐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꾸준히 돕는데 있습니다.

암은 매우 중한 병입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사소한 것이 해결되지 않고 쌓이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마치 작은 눈뭉치가 산을 내려오면서 커다란 눈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그 시작에 울증이 깊이 관련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암의 예방과 치료 그리고 재발방지에서 울증을 풀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김형찬 원장은 생각과 생활이 바뀌면 건강도 바뀐다는 신념을 가지고 서울 명륜동 다연한의원에서 환자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썼습니다. 본 칼럼의 내용은 유튜브 채널인 <암환자생활교실>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com/@ohkin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