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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남, 차가버섯 심마니의 어느날
오기남  |  kinam@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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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17  13: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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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버섯 심마니의 어느날


10월의 어느날, 드디어 차가버섯 선별이 시작되는 날이다. 1개월 전 산지(産地)에서 현지인들의 채취를 지휘했던 동료의 얘기로는 이번 제품은 작품(作品)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채취를 마친 차가버섯은 현지에서 작은 조각으로 쪼개어져 1차 건조를 마친 후 약 1주일 전쯤 톰스크시 근교에 위치한 선별장으로 운송되어 제2차 건조를 마치고 드디어 오늘부터 까다로운 선별의 손길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직 새벽의 기운이 가시지 않았음에도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톰스크 역사 앞은 제각자의 발길들로 분주하다. 역사 꼭대기에 달린 전광판을 통해 현재 바깥 날씨가 영하 3도임을 확인한다. 지난 해 이맘때엔 영하 15~30도까지 온도가 내려갔던 터라 예상보다 춥지 않은 날씨가 다행스럽다. 차가버섯을 선별할 때는 원물(原物)의 상태에 조그만 변화라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피한다. 난로도 안 된다. 따라서 날씨가 추우면 손이 매우 고생이다. 여하튼 느낌이 좋다.

시내에서 1시간 가량 걸려 날이 조금 밝아질 즈음 선별장에 도착하였다. 2차 건조를 끝낸 차가버섯들이 마대에 쌓여 산을 이루고 있다. 위생복을 갈아 입는다. 사실 차가버섯을 선별하는데 위생복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30분만 선별을 하다 보면 위생복의 색깔을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차가버섯 가루가 묻기 때문이다. 여러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첫 마대를 풀어 차가버섯 상태를 확인 할 때는 항상 흥분감과 긴장감을 멈출 수 없다. 마대를 들어보니 묵직하다. 괜찮은 징조다. 똑같은 크기의 마대라 할 지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차가버섯의 무게는 많게는 2배 정도까지 차이가 난다. 채취한 지가 오래되어 영양분이 많이 빠져나간 차가버섯의 경우 덩치에 비해 무게가 지나치게 가벼운 법이다.

이번 차가버섯은 톰스크 주(州)의 주도인 이곳 톰스크 시(市)에서 북서쪽으로 10여시간 걸리는 ‘박차르’란 지역에서 최근 1개월 이내에 채취된 제품이다. 모 케이블 방송에 소개되어 차가버섯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는 꽤 유명해진 ‘가르’라는 곳보다 6시간 정도가 더 걸리는 시베리아의 오지이다. 취미생활이 아닌 상업용으로 차가버섯이 채취된 지역으로는 역사상 가장 북쪽(북위 60도)에 위치한 지역이다. 몇년전만 하더라도 대도시 근교에서도 운만 좋다면 괜찮은 차가버섯을 만날 수 있었다. 작년만 하더라도 톰스크 주 바로 아래에 위치한 케메로보주에서도 좋은 차가버섯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차가버섯 추출분말의 경우 다른 첨가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차가버섯 추출분말의 품질은 전적으로 차가버섯 원료가 좋고 나쁘냐에 달려있다. 경험상 차가버섯 원료가 2배 정도 품질이 뛰어나다면 그것을 원료로 만든 추출분말의 품질은 2배가 아닌 4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추출분말의 경우 차가버섯의 유효성분만을 뽑아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차가버섯 원료를 구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나와 같은 ‘차가버섯 심마니’가 점점 더 시베리아의 북쪽 오지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첫 마대를 선별대 위에 풀어본다. 이번 ‘박차르’ 지역의 차가버섯이 채취 후 건조 및 보관만 잘 이루어졌다면 1등급 차가버섯 중에서 상위 5%안에 들어갈 것이다. 선별대 위에 떨어지는 차가버섯의 소리가 묵직하다.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눈에 띄는 첫 번째 놈을 들어본다. 때깔이 좋고 건조가 잘 되어 단단하고 영양분이 많아 묵직하다. 엽맥도 훌륭하고 속껍질도 두터운 것이 아주 잘 생겼다. 짜릿한 흥분이 이어진다. 다른 놈들도 몇 개 들어본다. 흥분이 이어진다. 상위 3%안에 들어가는 최상급품이다. 심봤다!!! 
 
   
 
추출분말 제조회사의 추출설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2톤 정도의 차가버섯을 골라야만 한다. 10~20kg의 추출분말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의 추출설비를 돌릴 수는 없는 것이고 이는 상업적으로도 불가능한 얘기다. 만약 10kg 정도의 추출분말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의 설비를 이용한다면 아마 한국의 소비자가가 수십배는 더 올라갈 것이니까. 마대를 열 개쯤 풀어 차가버섯의 상태를 꼼꼼하게 체크해본다. 선별율을 어떻게 가져갈까하는 결정을 하기 위해서이다.


아무리 최상급품이라 하더라도 선별율(選別率)의 결정은 매우 중요하다. 차가버섯이란게 100개의 차가버섯이 있다면 모두가 전부 조금씩 다르다. 최상급품이란 것은 그저 예선을 통과했을 뿐인 것이고 최상급품 차가버섯 100개를 1등에서 100등까지 줄을 세울 수도 있는 것이다. 물건에 대해 욕심을 부린다고 선별율을 1%로 하여 나머지 99개의 차가버섯을 포기한다면 선별에 걸리는 시간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 감당하기가 어렵다. 보통 선별되지 않은 차가버섯의 경우 구입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현지에서 재판매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품질 수준을 가장 높게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 타당한 선별율을 결정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며 많은 경험이 요구되는 일이다.

30%, 선별율을 30%로 정했다. 왜 하필 30%냐... 그건 그냥 경험에서 오는 감(感)일 뿐이다. 100개의 차가버섯 중 1등에서 30등까지 만을 고르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1등급 중 3%안에 드는 훌륭한 것들이고 이것들을 선별율 30% (평균 15%) 로 선별한다면 결국 1등급 제품 중 0.4%의 원료를 원료로 쓰는 것이다.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고 역사상 최고 품질의 추출분말이 만들어 질 것이다. 자, 이제 선별 시작이다. 눈과 손의 놀림이 빨라진다. 목표인 2톤을 골라내자면 6.7톤을 선별하여야 한다. 20kg 마대로 340개 정도, 마대 하나에 약 100여개의 차가버섯 조각으로 볼 때 전체적으로 34,000개의 차가버섯을 선별하여야 한다. 난 죽었다. 아니 우린 죽었다. ^^

선별 3시간째, 드디어 오른쪽 중지 손톱의 시작 부분이 피가 맺혔다. 차가버섯을 선별할 때는 감을 유지하기 위해 장갑을 절대 끼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차가버섯의 날카로운 껍질에 손을 상하기 일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게 내 일인걸. 선별 5시간째 가만히 보니 검지의 손톱이 깨져있다. 내일이면 아파올 것이다. 정후 그리고 정민아... 니 아빠 이 먼 타국에서 고생하는 것 알아야 한다. ^^ 
 
   
 
가만... 이게 뭐지... 그 많은 차가버섯 사이에서 한 놈이 갑자기 눈에 띈다. 수백개의 차가버섯이 쌓여 있어도 한번 눈으로 척~하면 좋은 놈이 보이고 그쪽으로 먼저 손이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놈은 별로 뛰어나지도 않는데 눈에 밟힌다. 가만히 들어 살펴보니 차가버섯 위에 하얗게 몇가닥 풀이 난 것 갔다. 뭐지? 아~ 불교에서 말하는 ‘우담바라’였다. 3000년에 한번 핀다는 우담바라가 차가버섯에 핀 것이다. 놀랍다. 뭔가 이번 차가버섯을 통해서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조심스럽게 자리를 옮겨 사진을 찍고 옆자리에 보관해 둔다.


간혹 선별을 하다 보면 전기가 찌리리 올 만큼 훌륭한 녀석들이 있다. 이런 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흥분시킨다. 100개의 차가버섯 중 단연 1등인 놈들이다. 이 녀석이 불과 1달전 쯤 자작나무에 달려 있었던 상상을 한다. 한 15년전쯤 작은 씨앗이 자작나무의 상처를 통해 자작나무 내부에 침투를 하고 자작나무에 아주 긴 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은 모습, 한 5년쯤이 지나 자신의 힘을 더는 감당못하여 자작나무 껍질을 깨고 세상에 선보이던 모습, 그 추운 시베리아의 환경 속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몸을 키워나가던 지난 10년여의 모습...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아... 이런 놈들만을 모아서 추출분말을 만든다면 얼마나 좋은... 말 그대로 명작(名作)이 나올까. 아마도 이번에 만들어지는 제품의 10배는 더 훌륭한 제품이 나올텐데... 아쉽다. 좋은 품질의 차가버섯이 반드시 필요한 분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정말 아쉽다. 언젠가... 꼭 한번 해내고야 말겠어.

허리가 아파 고개를 드니 바깥은 이미 어둠이 내려 앉았다. 북쪽 시베리아의 겨울 밤은 빨리 찾아와 늦게 간다. 백야(白夜)의 반대말이 우리말로 뭐더라 고민해본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오후 5시. 오늘은 이만 철수다. 아니 배고파서 그리고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다. 옆자리 동료의 모습을 보니 현재 내 꼴을 짐작할 수 있겠다. 머리에는 갈색 눈이 쌓인 듯 수북히 쌓인 차가버섯 가루가 족히 0.5cm는 되는 것 같다. 코를 푸니 온통 차가버섯 가루다. 풀어도 풀어도 차가버섯 가루만 나온다. 아~ 어서 돌아가서 배를 채우고 목욕을 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순서가 바뀌었다. 현재 상태로는 도저히 식당에 들어가기가 미안하다. 거지들이 배속에서 아우성을 치지만 어쩌겠는가. 목욕 후 옷을 갈아 입고 호텔 맨 윗층에 자리잡은 매점 겸 식당에서 간단히 배를 채운다. 이 놈의 러시아 음식은 언제나 먹어도 배가 안 찬다. 간단히 배를 채우는 느낌 뿐이다. 안면몰수하고 김치라도 들고 나올걸 하는 후회가 생긴다. 작은 보드카 한 병을 사들고 방으로 돌아 왔다.


창밖은 완전히 새까만 밤이다. 톰스크 역전의 훤한 가로등 불빛으로 뿌옇기는 하지만 하늘엔 별이 떠있다. 하늘이 맑은 모양이다. 시베리아에서 이맘때쯤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행운이다. 시베리아 겨울밤의 대부분은 눈이 바로라도 쳐부울듯한 우중충한 모습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힘들고 사소해 보이지만 한국에서 차가버섯을 필요로 하는 분들을 생각해야해...” “그래도 오기남이란 놈이 고른 차가버섯이라면 확실할거야 라는 믿음을 가지고 차가버섯 제품을 드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하나하나 예사로 넘어갈 일이 없어...” 서울에서 가져온 도시락 김을 하나 꺼내 보드카의 안주로 삼으며 옆자리의 초보 동료에게 고참의 설교를 시작한다. “차가버섯 일을 하면서 호텔방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거의 기적스러운 일이지...” 보드카의 기운이 녹아들며 약간의 과장이 섞인다. 자야할 때인가 싶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차가버섯을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차가버섯을 필요로 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는 제품이 만들어지기를 기도한다. 자야겠다. 내 손을 기다리는 차가버섯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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